선, 그리고 악
태초의 지구엔 없던 단어였다. 이 단어가 생겨난건, 물속에 존재하던 유기물들에서부터 시작됬다. 뜨거운 태양빛을 피해, 그들은 물속에서 양분을 만들며 몸집을 키워나갔다. 뭐...그렇게 진화가 이루어지고,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생겨났다. 서로를 견제하고 잡아먹는 그 굴레속에서, 우리가 등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생겨났다. 우리의 모습은 굴레속에서 계속해서 모방되어 왔고, 지금은 가장 지성의 생명체들 즉,
지구위에서 46억년 이래로 가장 정교한 문명을 이룬 수인의 모습으로, 그들의 선과 악을 관리하고 있다.
선
흔히 천국이라고 불리는 우리 부서가 다루는 "이유".
선함은 무조건 "악"과는 배반되어야 한다는 선배의 말을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환생을 한다며 기뻐하던 선배의 모습, 꼬리가 빠질듯 살랑거리던 그 뒷테를 나는 어렴풋이 빛에 씌인 그 눈부신 이미지를 어렴풋이 나마 생각해볼 뿐이였다.
"페르"
내 사색을 깬건, 대천사님의 부름이였다.
"수습 천사 페르, 대천사를 뵙습니다"
나는 수많은 눈과 깃털로 둘러쌓인 대천사이자 나의 스승, 오파님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침묵을 이어가며 중앙에 있는 거대한 눈으로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대천사
존재들의 시선에서 구애받지 않는 존재
선과 악의 경계를 구분짓는 존재
선을 유지하는 존재
오파님은 나를 가만히 직시하며, 말을이었다.
"페르"
"오파님, 부르셨습니까"
그는 평소보다 더욱 날이 서린,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뻗은 차디찬 분노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따라와라, 네 첫 임무이다"
내 운명을 바꿀 한 페이지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넘겨졌다.